간증

1936년 10월 동역자 집회에서 워치만 니가 세 차례에 걸쳐 나눈 간증 — 구원과 부르심, 섬김을 배움, 순종의 교훈, 아버지 되신 하나님, 믿음의 생활.

워치만 니는 1936년 10월 중국 복건성 앞바다의 섬 고랑서(鼓浪嶼)에서 열린 동역자 집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자기 간증을 나누었습니다. 엮은이 웨이 광시(魏光禧) 형제가 아는 한, 그가 자기 일생을 이렇게 말한 것은 이때가 유일했습니다. 이 세 간증은 『워치만 니의 간증』이라는 책으로 묶여 1974년에 처음 나왔습니다.

세 간증이 다룬 것은 이러합니다. 첫째는 구원과 부르심, 둘째는 십자가의 교훈과 일에서의 인도와 치유자 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의 네 방면, 셋째는 믿음의 생활과 돈에 대한 태도와 문서 사역의 필요를 하나님께 바라본 일입니다. 엮은이가 밝힌 대로 이 세 간증이 1936년 이전 그의 영적 생애와 일 전부를 담은 것은 아닙니다.

구원과 부르심

그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두 누이 다음 셋째로 태어났습니다. 1920년 열일곱 살에 구원받았는데, 그에게는 구원과 부르심이 동시에 왔습니다.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 둘은 따로 오지만 그에게는 한 자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.

1920년 4월 29일 저녁, 그는 방에 홀로 있었습니다. 주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앉으나 누우나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. 그날 밤의 결단으로 그는 자기 장래를 단번에 정했습니다. 학업과 출세를 향해 품고 있던 뜻을 내려놓은 것입니다. 그는 그 시간 이후로 부르심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.

주님 섬김을 배움

구원받은 뒤 그는 죄인들의 혼을 사랑하게 되어 학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. 그런데 일 년 가까이 애썼는데도 구원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.

그 무렵 그는 마가렛 바버의 동역자인 서양 선교사 그로브스 자매를 만났습니다. 구원받은 뒤 일 년 동안 몇 사람을 주님께 인도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. 어떻게 간증하느냐는 물음에는 듣든지 말든지 아무나 붙들고 말한다고 답했습니다. 자매는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.

그 대화 뒤 그는 곧바로 자기 죄를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. 배상하고 빚을 갚고 학우들과 화해하고 지은 잘못을 고백했습니다. 그리고 공책에 일흔 명 남짓한 이름을 적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. 효과가 없어 다시 찾아갔을 때 자매는 실망하지 말고 구원받는 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도하라고 했습니다.

순종의 교훈을 배움

1923년 일곱 사람이 동역자로 함께 일했습니다. 그 가운데 그와 다섯 살 위인 동역자가 앞장섰는데, 금요일마다 열린 동역자 집회에서 두 사람의 논쟁을 나머지 다섯이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. 논쟁이 있은 뒤 그가 마가렛 바버를 찾아가 억울함을 말할 때마다, 그녀는 성경을 들어 연장자인 동역자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. 금요일 오후의 다툼 뒤 저녁에 운 적도 있었습니다.

그렇게 일 년 반 동안 그는 자기 일생에서 가장 귀한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.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그가 영적인 실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. 그는 젊은 동역자들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. 십자가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면 쓸모 있는 그릇이 될 수 없으며,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어린양의 영, 곧 온유함과 겸손이라는 것입니다.

아버지 되신 하나님

1924년 그는 자기 병을 처음 알았습니다. 기운이 없고 가슴이 아프고 미열이 있었습니다. 결핵이었습니다. 그는 일을 마치지 못한 채 주님을 뵙고 싶지 않았습니다. 시골로 내려가 쉬면서 주님과 더 교통하기로 하고, 무엇이 자기를 향한 뜻인지 물었습니다.

병은 낫지 않았습니다. 글을 쓰고 성경을 공부하려 애썼지만 몹시 힘에 부쳤고, 오후마다 미열이 있었으며 밤에 잠들지 못했습니다. 한 달 넘게 기도한 끝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배운 것을 책으로 써야겠다고 느꼈습니다. 책은 나이가 들어서 쓰는 것이라 여겨 왔지만, 이 땅을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습니다. 그렇게 긴 병중에 쓴 것이 『영에 속한 사람』입니다. 출판할 때가 되자 사천 달러가 필요했는데, 가진 것이 없어 하나님께 그 필요를 구했습니다.

책이 나온 뒤 병은 더 나빠졌습니다. 어느 날 그는 어찌하여 이렇게 일찍 부르시느냐고 물으며 자기 허물을 고백했고, 동시에 자기에게 믿음이 없다고 아뢰었습니다. 그리고 시험이 곧바로 왔습니다. 성경은 믿음으로 선다고 하는데 그는 여전히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. 일어나 설 것인가 그대로 누워 있을 것인가. 그는 믿음으로 일어섰고, 방 안을 걷는 것을 넘어 층계를 내려가겠다고 기도한 뒤 그대로 문을 향해 걸었습니다. 층계 아래에 이르자 몸이 아주 든든해졌습니다. 그날 이후로 믿음으로 살겠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.

일하는 중 하나님을 바라봄

1923년 웨이 광시 형제가 그를 복건성 북쪽 건구(建甌)로 초청해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. 그의 주머니에는 여비의 삼분의 일인 십오 달러밖에 없었습니다. 그런데 떠나기 전 그중 오 달러를 한 동역자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습니다. 이미 모자라는 돈에서 또 덜어 내게 되자 그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.

건구에서 일을 마치고 복주로 돌아올 때가 되자 같은 문제가 다시 생겼습니다. 돌아올 여비가 없었던 것입니다. 떠나기로 한 월요일을 앞두고 계속 기도하던 중, 주일 저녁에 영국인 필립스 목사가 그와 웨이 형제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. 그 자리에서 목사는 자기와 자기 교회가 그의 메시지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. 이튿날 떠날 때 그의 주머니에는 몇 달러뿐이었지만, 그는 주님께서 데려오셨으니 데려가지 않으실 리 없다고 기도하며 걸었습니다.

복주로 돌아왔을 때, 오 달러를 받았던 동역자의 아내가 물었습니다. 떠날 때 본인도 넉넉지 않았을 텐데 어찌하여 갑자기 오 달러를 주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. 그는 이것이 자기 일생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말했습니다. 손에 든 돈이 적을수록 하나님께서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. 다만 쉬운 길은 아니어서, 믿음의 생활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이가 많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.

돈을 주님께 드리는 일에 관해서는, 수입의 십분의 일이든 절반이든 일정한 몫을 정해 하나님의 손에 두라고 권했습니다.

이 쪽은 watchmannee.org — Watchman Nee's Testimony 의 내용을 한국어로 간추린 것입니다. 원문은 웨이 광시 형제가 엮은 『워치만 니의 간증』에서 왔으며, 본인의 말 전문은 링크에서 영어로 보실 수 있습니다. © Living Stream Ministry. All rights reserved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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